[※ 본 컨텐츠는 한국화학연구원 제2기 케미러브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작성된 컨텐츠입니다.]
여러분들은 화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무슨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혹시... 미드 《브레이킹 배드》를 떠올리신 건... 아니겠죠....? ㅎㅎ...
물론 그 드라마의 주인공도 화학자이긴 하지만,
화학자가 그런 불법적이고(?) 요상한(?) 일만을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화학이라는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세부 분야들이 존재하고
그만큼 다양한 주제의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번 한국화학연구원 제2기 케미러브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여러분들께 한국화학연구원의 최신 연구 성과들을 소개해드림과 동시에
다양한 화학 분야들 역시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8월에 소개해드릴 화학 분야는 분석화학 입니다!
화학에서는 물질을 합성하는 것 못지 않게 물질의 성질을 분석하고
이 물질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분석 기기들과 함께
이 분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할까요?

▶ 도핑과의 전쟁

세계 랭킹 4위의 터키를 꺾는 기적을 연출하여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을 한몸에 받았던 대한민국 여자 배구 대표팀의 도쿄 올림픽 4강전이 있던 날. 상대였던 브라질의 한 선수가 경기를 불과 몇 시간 앞둔 상황에서 출전 정지가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도핑테스트 결과 금지 약물인 근육 증강제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드러났기 때문이죠.
올림픽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제 대회, 그리고 스포츠 리그에서는 선수들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위하여, 그리고 약물의 오남용으로 인해 선수들의 건강이 위협받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선수들이 복용해서는 안 되는 금지 약물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실제로 선수들이 이를 지키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불시에 도핑테스트를 실시하고 있죠.

더 나은 성적을 향한 비뚤어진 욕망은 선수들이 금지 약물에 손을 대도록 유혹합니다. 그 비뚤어진 욕망을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도핑 테스트로는 검출할 수 없는 약물을 디자인하여 끊임없이 규제를 회피하려고 하죠.
물론 약물을 적발하려는 측에서도 이를 손놓고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약물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은 물론이고, 선수의 소변이나 땀, 혈액 등에 존재하는 아주 극미량의 약물이라도 검출해낼 수 있도록 분석 기법을 끊임없이 개량하는 노력을 거듭합니다. 말 그대로 들키지 않으려는 자와 잡아내려는 자의 치열한 머리 싸움인 것이죠. 그리고 그 전쟁의 일선에, 분석화학자들이 있습니다.
▶ 분석화학 – 측정(Measure)의 화학

대한화학회에서 학술부회장을 맡고 계신, 서울대학교 화학부의 이동환 교수님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측정(Measure), 모델(Model), 만들기(Make)라는 ‘3M’이 화학을 잘 대변하는 말이다.”
보통 ‘화학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실험실에서 가운을 입고 실험 기구를 양손에 든 채로 무언가를 섞거나 가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질을 ‘합성’하고 있는 모습이죠.
물론 합성이 화학의 꽃이긴 합니다만, 나머지 두 개의 M, 즉 ‘측정’과 ‘모델’ 역시도 합성 못지않게 화학 연구에서 중요합니다. 모델은 합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합성의 결과물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라면, 측정은 합성을 통해 얻어낸 물질이 실제로 어떤 성질을 띠고 있는지, 의도했던 물질이 맞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과정이죠.
물질의 특성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각각의 특성을 확인하기에 알맞은 분석을 실시하고 적절한 자료 처리 방법을 통하여 데이터를 해석해야 합니다. 이처럼 물질의 특성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그리고 분석으로부터 얻어진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화학 분야가 바로 ‘분석화학(Analytical Chemistry)’입니다.
무언가를 측정한다고 하면 자, 저울, 온도계와 같은 도구들을 먼저 떠올리실텐데요. 분석화학에서는 여러분들이 난생처음 들어보실 다양한 기기들을 사용하는데요. 오늘 포스팅에서는 그중에서도 화학자들이 자주 쓰는 분석 기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화학자들의 MRI – NMR 분광법

여러분들은 혹시 뼈나 인대를 다쳤을 때, 아니면 건강검진을 받을 때 MRI 촬영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는 거대한 원통 안에 들어가 잠시 누워있으면, 곧 우리의 뇌나 허리의 모양이 드러나는 흑백의 이미지가 찍히고 의사가 그것을 보면서 몸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진단하죠.
그런데 화학자들도 물질을 분석할 때 MRI와 비슷한 기기를 쓰신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물질들이 어떤 작용기1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이 분석법의 이름은 바로 ‘NMR(Nuclear Magnetic Resonance, 핵자기공명) 분광법’입니다.
NMR과 MRI의 기반에는 동일한 과학적 원리가 깔려 있습니다. 195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펠릭스 블로흐 박사와 에드워드 퍼셀 박사가 발견한 ‘핵자기공명’이라는 현상이 그 주인공입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원자핵에는 자성과 연관이 되어 있는 ‘스핀’이라는 성질이 존재하죠, 원자핵에 외부에서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주면, 원자핵 내부의 스핀이 자기장과 나란한 방향, 혹은 반대 방향으로 정렬됩니다. 이렇게 스핀이 정렬된 상태의 원자핵이 특정 파장의 ‘마이크로파’를 흡수하면, 스핀의 방향이 뒤집히는 ‘스핀 반전(spin flipping)’이 일어나고 원자핵이 들뜬 상태가 됩니다. 이 현상이 바로 ‘핵자기공명’입니다.
들뜬 상태의 원자핵은 일정 시간 동안 천천히 바닥 상태로 돌아오면서 마이크로파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그런데 모든 원자핵이 동일한 파장의 마이크로파의 파장을 방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원자와 연결되어있는 다른 원자의 종류가 무엇인지, 또 그 원자 주변을 어떤 원자들이 둘러싸고 있는지에 따라서 원자핵 주변의 전자 밀도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주위의 전자 밀도가 다른 각각의 원자핵은 서로 다른 파장의 마이크로파를 흡수하고, 이로 인해 들뜬 상태에서 바닥 상태로 가라앉을 때 방출되는 마이크로파의 파장 역시 달라집니다.
따라서, 어떤 물질에 일단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주고 여러 파장의 마이크로파를 쭉 쪼여준 뒤, 이 물질이 바닥 상태로 가라앉으면서 어떤 파장의 마이크로파를 방출하는지를 보여주는 스펙트럼을 얻어내 분석하면 물질에 어떤 상태의 원자들이 있는지, 즉 어떤 작용기들이 있는지를 분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통 NMR은 물질 내에 있는 경수소 원자나 13C 탄소 동위원소의 원자핵을 감지할 때 주로 활용됩니다. 그러나 이것들만 분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단백질이나 DNA와 같은 생체 분자들을 분석할 때에는 황이나 인을 감지하는 NMR도 종종 활용되기도 합니다.
MRI의 발명은 인간이 다양한 질병들을 더 빠르고 더 자세히 진단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폴 로터버 박사와 피터 맨스필드 박사는 MRI의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2003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죠. NMR 역시 우리 인류가 수많은 물질들의 구조에 대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얻어낼 수 있도록 해주었고, 분석할 수 있는 물질의 폭도 대폭 넓어졌습니다. NMR 분광학의 초석을 다진 리하르트 로베르트 에른스트 박사는 1991년 그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고요.
같은 과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발에 기여한 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은 것까지, NMR과 MRI는 참 닮은 점이 많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제목을 잘못 쓴 것 같아요. NMR 분석법이 MRI보다 먼저 발전했으니까, MRI를 ‘의사들의 NMR’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 분자도 ‘스트레칭’을 한다 – IR 분광법

과학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 하더라도, TV를 자주 보신다면 ‘적외선’이라는 단어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불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영상을 촬영하거나, 혹은 우리 몸의 체온을 재기 위해 ‘적외선 카메라’를 종종 사용하기 때문이죠. 아니면 찜질방에 붙어있는 ‘원적외선 수면실’과 같은 홍보 문구에서 보셨을 수도 있겠네요.
적외선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빛인 ‘가시광선’에 비하여 약간 더 긴 파장을 가지는 빛입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일상생활에서는 적외선은 보통 열을 방출하는 무언가를 감지할 때에 사용하지만, 화학자들은 물질의 구조를 분석할 때 활용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분자’들은 원자들의 공유결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분자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 간의 결합은, 나무막대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이 아니라 스프링처럼 탄력이 있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분자들은 정확히 하나의 형태로 멈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자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과 그 원자들이 이루고 있는 결합의 종류에 따라서, 신축(stretching)이나 굽어짐(bending)과 같은 여러 모드의 ‘진동 운동’을 할 있습니다. 즉, 외부로부터 특정한 ‘진동 모드’와 대응하는 파장의 적외선이 쬐여지면, 그 적외선을 흡수하여 분자를 진동시키는 에너지로 활용하여 실제로 진동하는 것이죠.
여기서 과학자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분자가 어떤 파장의 적외선을 흡수하는지를 확인한다면 그 분자 안에 어떤 결합들이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실제 ‘IR(Infrared, 적외선) 분광법’의 기본 원리입니다. 기기를 통해 얻은 ‘흡수 스펙트럼’에서 피크2가 어느 위치에 형성되는지를 분석하면, 분자에 포함된 결합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분자에 어떤 작용기가 포함되어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각각의 분자마다 IR 스펙트럼에 여러 피크들이 복잡하게 섞여나오는 고유한 ‘지문 영역’이 있어서, 이 지문 영역 간의 대조를 통해서 시료가 어떤 물질인지를 곧바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물질의 뼈대를 보다 – XRD

몸이 아파서 정형외과를 가보셨던 분이라면 한 번쯤 ‘엑스레이’ 검사를 받아보셨을 겁니다. 엑스레이 촬영 기기를 이용해 우리 몸 전체를 촬영하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뼈들이 선명한 흰색으로 찍힌 사진들이 나오지요.
엑스레이 촬영에 활용되는 X-선은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이 처음 발견하였습니다. 발견 당시만 하더라도 도대체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미지의 방사선이라는 뜻에서 ‘X-선’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훗날 여러 연구를 통해 이 X-선이 사실은 매우 짧은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1912년,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폰 라우에에 의해 X-선을 활용한 새로운 분석법의 막이 열리기 시작하죠. 바로 XRD(X-ray Diffraction), 즉 'X-선 회절' 분석입니다.
파동인 전자기파는 기본적으로 직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곧게 나아가던 전자기파가 좁은 틈이 있는 장애물을 만나게 되면, 이 틈을 그대로 직진하여 통과함과 동시에 틈의 가장자리 부분에서는 경로가 휘어지면서 독특한 형태의 패턴을 형성하는데요. 이를 빛의 ‘회절(diffraction)’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X-선 역시 전자기파의 일종인 만큼 좁은 틈을 만나면 회절 현상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X-선의 파장은 아주아주 짧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짧은 거리, 즉 분자와 분자 사이, 원자와 원자 사이와 같은 틈에서도 회절이 잘 일어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X-선을 원자들이나 분자들이 아주 규칙적인 형태로 배열되어있는 ‘결정’에 쏘면, 결정 내부에서 X-선의 회절이 일어나고, 회절된 X-선들끼리 서로 간섭3을 일으키면서 독특한 ‘X-선 회절(XRD) 패턴’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결정을 이루고 있는 입자들 간의 거리, 입자들의 배열 형태, 그리고 결정을 이루고 있는 입자들의 전자 밀도 등에 따라 X-선의 회절이 다른 정도로 일어나고, 이로 인해 결정의 종류가 다르다면 X-선 회절 패턴의 형태가 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즉, 각각의 결정은 자신만의 고유한 X-선 회절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반대로 이야기하면, 어떤 결정의 X-선 회절 패턴을 분석하면, 그것이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결정이고 어떤 3차원적인 구조를 가진 물질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XRD 패턴이 물질의 ‘뼈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1953년 제임스 듀이 왓슨 박사와 프랜시스 크릭 박사가 우리 몸의 유전 물질인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 발표했을 때, 이 발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로절린드 프랭클린 박사가 밝혀낸 DNA의 X선 회절 구조 패턴이었습니다. 실제로 현재에도 단백질이나 DNA와 같은 생체 고분자의 3차원적 구조나 금속 원소들로 구성된 무기 화합물의 결정 구조를 파악할 때, XRD 패턴 분석은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 친한 것은 친한 것끼리 – 크로마토그래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비슷한 또래의 독자분들이시라면, 초등학교 과학 수업 시간에 했던 실험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거름종이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잘라서 끝부분에 검은색 수성사인펜으로 점을 칠하고, 점이 물에 살짝 잠기도록 거름종이를 담그면, 시간이 지난 후에 거름종이에 색색의 색소들이 분리되어 나오는 것을 관찰하는 실험 말이죠.
이 실험은 매우 간단하게 ‘크로마토그래피’ 분석법을 체험해보는 실험입니다. 크로마토그래피는 여러 가지 물질이 혼합되어있을 때, 이 혼합물을 각각의 성분으로 분리해내기 위해 종종 쓰는 실험 기법입니다.
크로마토그래피에는 ‘정지상’과 ‘이동상’이 필요합니다. 분리가 되어야 할 혼합물 시료는 이동상에 섞인 채로 정지상을 통과하여 검출기 쪽으로 흘러갑니다. 이때 시료를 구성하는 성분 중 정지상과 상호작용을 강하게 하는 물질들은, 말하자면 정지상에 ‘붙잡힌’ 상태가 되어서 느리게 이동하고 따라서 검출기에 느리게 도착합니다. 반면에 정지상과의 상호작용이 약하거나 이동상과의 상호작용이 강한 성분들은, 정지상의 손길을 뿌리치고 빠르게 이동하고, 따라서 검출기에 더 빠르게 도착합니다. 즉, 혼합물 속의 성분이 정지상 및 이동상과 얼마나 상호작용을 하냐에 따라서 검출기에 도달하는 속도가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혼합물 속의 성분들이 분리되는 것이죠.
‘도대체 무슨 말이야?’ 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텐데요. 간단한 비유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BTS에 관심이 없는 여러분이 BTS의 팬인 친구 한 명과 같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다고 해볼까요? 그런데 창밖을 보니 BTS 사인회가 열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여러분은 BTS에 별 흥미가 없으니 그냥 버스를 타고 가던 길을 계속 가겠지만, BTS의 팬인 친구분은 곧바로 버스에서 내려서 BTS의 사인회장으로 달려가겠죠? 여기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친구가 분석하고자 하는 시료, 버스가 이동상, BTS의 사인회가 정지상이라고 생각하면 크로마토그래피의 원리를 이해하기가 조금은 쉬우실 것입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입니다. 시료 속의 성분이 정지상을 정말로 ‘좋아해서’ 정지상에 붙잡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지상의 종류에 따라서 시료와 정지상이 상호작용하는 원리도 달라지는데요, 이렇게 정지상이 시료를 붙잡는 상호작용 방식에 따라 크로마토그래피도 ‘이온 교환 크로마토그래피’, ‘광학 이성질체 크로마토그래피’와 같은 다양한 종류로 구분이 됩니다. 또한, 시료를 싣고 이동하는 이동상의 종류가 무엇이냐에 따라 ‘액체 크로마토그래피(LC)’, ‘기체 크로마토그래피(GC)’ 등으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 물질의 ‘체급’을 분석해보자 – MS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크로마토그래피만으로는 섞여 있는 성분들을 분리해낼 수는 있지만, 분리한 각각의 성분들이 무슨 물질인지를 분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분석화학자들은 보통 크로마토그래피 기기에 물질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기기를 하나 더 이어붙여서 시료의 분리와 분석을 동시에 진행하는데요, 이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기가 바로 MS(Mass Spectrometer), 즉 질량분석기입니다.
질량분석기는 분자의 체급이라고 할 수 있는 ‘분자량’을 측정하기 위한 기기입니다. 전하를 띤 입자가 일정한 속력을 가진 채로 전기장이 걸려 있는 영역에 들어가면, 이 입자에 힘이 작용해서 속력이 줄어들거나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 입자의 속도가 변화되는 정도는 그 입자의 전하량을 질량으로 나누어준 ‘비전하’ 값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비전하가 서로 다른 입자는 전기장이 걸려 있는 동일한 통로를 따라 날아가더라도 도착점에 도달하는 시간이 서로 달라진다는 것이죠.
이를 응용한 것이 바로 TOF(Time of flight) 질량분석기입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출발점에서 검출기까지 시료가 날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서 물질의 비전하를 계산해내고, 비전하로부터 분자량을 계산하는 기기죠.
질량분석기의 원리가 이해가 되셨다면, 이 과정에서 전하를 띠지 않는 입자들도 전하를 띠도록 ‘이온화’시켜 주는 과정이 필수라는 것을 깨달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분석하고자 하는 시료를 이온화하는 방법 역시도 여러 종류가 존재하는데요, 존 버넷 펜 교수가 발명한 ESI(Electrospray Ionization, 전기분무 이온화) 기법과 다나카 고이치 씨가 발명한 MALDI(Matrix-Assisted Laser Desorption Ionization, 매트릭스 보조 레이저 탈착 이온화) 기법이 가장 흔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두 사람 모두 질량분석기에 활용될 이온화 기법을 개발한 공로로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는데요, 특히 다나카 고이치 씨는 최초이자 유일한 ‘학사 출신’ 노벨상 수상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MS는 시료의 양이 아주 적더라도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분석 기기로 꼽힙니다. 뿐만 아니라, 단백질 같은 질량이 매우 큰 분자도 비교적 정확하게 분자량을 계산할 수 있어, 현재까지도 XRD와 더불어 단백질을 분석해야 하는 생화학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나노 단위로 바라봐주겠어 – EM

앞서 소개해드린 기기들이 분자량이나 작용기 등 물질이 어떻게 생겼을지에 대한 간접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면, 물질의 표면이나 생김새를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기기도 있습니다. 바로 EM(Electron Microscope), 즉 전자 현미경입니다.
“현미경은 생물학자들이 쓰는 거 아니야?”라고 묻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네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현미경은 빛과 렌즈를 이용하는 ‘광학 현미경’입니다. 육안으로 관찰하기 힘든 작은 물체의 표면에서 반사가 된 빛이 렌즈를 거쳐 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물체의 상이 확대되어 보이는 것이죠. 이 광학 현미경은 세포 정도의 크기를 가지는 물체를 확대해서 보는 데에는 매우 유용한 도구이지만, 그보다 훨씬 작은 나노미터 단위의 크기를 가진 물체를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전자 현미경입니다. 전자 현미경도 기본적으로는 광학 현미경과 원리가 비슷합니다. 다만 아주 작은 물체의 크기도 서로 구분해낼 수 있는 능력인 ‘해상도’를 키우기 위하여, 물체에 빛 대신 ‘전자빔’을 쏘고, 유리로 된 렌즈 대신에 그 전자빔을 한 곳으로 모으고 검출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를 사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 검출기에 모인 전자빔은 ‘명암’의 형태로 감지되고, 이 ‘명암’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시각화하는 과정을 거치면 물체의 3차원적인 형태가 흑백의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전자빔을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서 전자 현미경은 다시 ‘SEM(Scanning Electron Microscope, 주사전자현미경)’과 ‘TEM(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 투과전자 현미경)’으로 분류됩니다. SEM과 TEM 모두 성능이 좋은 기기를 사용할 경우 실제로 나노미터 단위의 크기를 가지는 입자들의 형태도 관찰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보통 물질 표면의 미세한 형태 변화를 훑어보아야 하는 표면화학이나, 나노 단위의 입자들을 합성하고 관찰해야 하는 연구에 자주 사용됩니다.
▶ 기술이 분석을 진보하게 하리라

교육 과정이 개정되기 이전의 고등학교 화학 과목을 공부해보신 분들이라면, ‘리비히 분석법’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탄수화물 시료를 산소가 풍부한 환경에서 불에 태운 다음, 생성된 이산화탄소와 물의 질량을 측정해서 시료를 구성하는 탄소와 수소의 비율을 계산하는 실험인데요. 19세기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이 실험 방법을 처음 정립했을 때에는 염화칼슘과 수산화칼륨이 채워진 관의 질량이 증가한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분자를 구성하는 원소의 성분 및 비율을 분석하는 방법 역시도 발전시켰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EA(Elemental Analyzer), 즉 원소 분석기는 시료를 고온에서 태워서 나오는 물질들을 분석한다는 기본 원리는 리비히 분석법과 동일하지만, 연소 생성물을 기체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하여 분리하고, 질량이 아닌 열전도도를 측정하여 원소들의 구성 비율을 계산합니다. 리비히 분석법에 비해 정확하게 비율을 계산할 수 있음은 물론, 탄소와 수소 외에도 산소, 황, 질소의 구성 비율까지 파악할 수 있죠.
앞서 소개한 분석 기법들도 결국 기술의 발전 덕분에 개발될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공학의 발달 덕분에 데이터를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전자공학의 발달 덕분에 분석 기기의 정밀한 제어가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기계공학의 발달 덕분에 복잡하게 작동하는 기기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이 가능해졌죠.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보다 정확하고 섬세한 자연과학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과학의 연구 성과는 다시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져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원동력이 되죠. 기술과 과학 사이의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선순환에 발걸음 맞추어 같이 진보해나가고 있는 분석화학의 모습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고 자료]
- 이성규, "생물학 역사 바꾼 결정학의 선구자", 사이언스타임즈, 2019년 4월 24일자 수정, 2021년 8월 13일 접속.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83%9D%EB%AC%BC%ED%95%99-%EC%97%AD%EC%82%AC-%EB%B0%94%EA%BE%BC-%EA%B2%B0%EC%A0%95%ED%95%99%EC%9D%98-%EC%84%A0%EA%B5%AC%EC%9E%90/
- Stryer, L. et. al. 저, 박인원 et. al. 역, Stryer 생화학 (8판), 범문에듀케이션: 서울, 89-92, 99-105.
- Harris, D. C. et. al. 저, Exploring Chemical Analysis (Fifth Edition), W.H. Freeman and Company: NY , 455-473, 479-500, 511-522 (2013)
- Mcmurry, J. E. 저, 화학교재연구회 역, 맥머리의 유기화학 (8판), 사이플러스: 서울, 389-410, 415-442 (2012)
- Hewitt, P. G. 저, Conceptual Physics (Eleventh Edition, International Edition), Pearson: IL, 513-515 (2010)
- 한국화학연구원 화학분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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