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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과학] 양과 원숭이와 사자와 돼지

Chemistory - 소소한 화학 이야기

by 오가네손 2022. 8. 31.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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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컨텐츠는 한국화학연구원 제3기 케미러브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작성된 컨텐츠입니다.]


안녕하세요! 작년 케미러브 서포터즈 2기 활동에 이어서

올해도 또다시 케미러브 서포터즈 3기 활동으로 돌아왔습니다 ㅎㅎ

올해는 한국화학연구원의 최신 연구 성과는 물론이고

화학연구원에서 만든 여러 컨텐츠도 함께 소개해드릴 예정이니까요!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 늦어서 죄송합니다, 디오니소스 님!

2016년, 온라인 커뮤니티를 강타한 ‘밈’이 있었습니다. 어린이 애니메이션 <올림포스 가디언>의 한 장면으로, 이미 깨져버린 흥을 책임지기 위해 오르페우스가 신들린 리라 연주를 하는 영상이죠. 사정없이 온몸을 삐그덕(?)대는 등장인물들과 왜인지 리라에서 흘러나오는 하드락 사운드가 기묘한 조화를 일으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상입니다.

 

▲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 책임져!

이 난장판(?)이 벌어지게 된 배경에는 ‘디오니소스(Dionysos)’ 가 있습니다. 20세기 영국의 작가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창작한 현대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헤스티아로부터 올림포스의 황금 의자를 물려받은 반인반신의 존재로 광기, 축제, 야성, 그리고 ‘포도주’의 신으로 묘사가 됩니다. 여러 매체에서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의 신이라는 설정에 걸맞게 한 손에 술병 혹은 술잔을 들고 있거나, 포도 덩굴이 몸에 얽혀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는데요. 앞서 소개드린 <올림포스 가디언>의 원작 만화에서도 디오니소스는 아예 포도 모양 머리 장식을 한 캐릭터로 묘사가 됩니다.

 

 

비단 그리스 로마 신화 외에도, 오랜 옛날부터 인간이 ‘술’을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은 꽤 많이 남아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사시라 불리는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포도로 술을 빚는 여인인 ‘시두르(Sidur)’ 이야기가 나오며, 중국의 고대 국가였던 하와 상에서는 폭군이 ‘주지육림(酒池肉林)’, 즉 술로 만든 호수와 고기로 만든 숲을 만들어 유흥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죠. 성경에는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키는 등 포도주에 대한 묘사가 여러번 등장합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술을 담그는 데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석기 시대의 토기가 발견되었다는 분석도 있죠.

이처럼 술은 역사가 기록되기도 전의 까마득한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인류의 오랜 동반자로 남아있는데요. 도대체 술은 어떻게 만들어지길래 그 먼 옛날에도 손수 빚어서 먹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길래 아직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요? 오늘 포스팅에서 술의 이모저모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 술 = “Alcohol”

여러분께 간단한 영어 문제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술’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무엇일까요? 술의 종류에 따라서 spirits, liquor 등 다양한 표현이 쓰이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은 ‘alcohol’, 즉 ‘알코올’일 것입니다. 실제로 술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정신질환을 ‘알코올 의존증(alcoholism)’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런데 우리가 술 외에 일상에서 접하는 다른 제품들의 이름에도 ‘알코올’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COVID-19 이후로 사람들이 애용한 ‘알코올 소독제’나 상처를 소독할 때 쓰는 ‘알코올솜’, 혹은 저와 비슷한 또래의 독자 분들이시라면 초등학교 과학 실험 때 한 번 쯤은 써보셨을 ‘알코올램프’ 등이 그 예시이죠. 그런데 이 알코올들과 술의 ‘알코올’은 같은 물질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실 화학에서 ‘알코올’은 특정한 분자 구조(하이드록시기)를 가진 유기 화합물들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다만 탄소의 개수나 하이드록시기가 붙어있는 위치 등 물질의 구조에 따라 이름이 달라질 뿐이죠. 따라서 정말 다양한 물질들이 ‘알코올’이라는 이름 아래에 묶일 수 있는데요. 알코올솜이나 알코올 소독제의 경우 주로 이소프로판올 혹은 에탄올을 사용하고, 알코올램프에는 주로 메탄올을 사용하죠.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술에 들어가는 알코올은 탄소 2개로 이루어진 매우 간단한 알코올인 ‘에탄올’입니다.

 

▲ 화려한 술병 목치기 퍼포먼스나 새 술의 첫 잔을 버리는 술자리 예절은 과거 주조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술에 섞여들어간 극미량의 메탄올을 날리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라는 낭설이 있습니다만 정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첫 잔이 더 쓴 건 아니라네요😅

 

그런데 사실 평상시에는 ‘에탄올’과 ‘알코올’을 굳이 구분해서 써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정상적인 술’만을 구매한다면, 술 안에 들어있는 알코올은 당연히 에탄올 뿐일테니까요. 하지만 법망을 피해 저렴한 술을 제조하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직접 술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든 혹은 실수로든 술에 메탄올을 섞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데요. 메탄올의 경우 소량만 섭취하더라도 실명을 유발하거나 사망까지 이를 수도 있고, 실제로 메탄올이 섞인 술을 먹고 사고가 난 사례도 있으므로 반드시 조심하고 합법적인 경로로 제작, 유통 및 검수가 이루어지는 술만을 마셔야 합니다. 

 

▶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마법

그렇다면 ‘안전하게’ 만들어지는 술은 어떤 원리로 제조가 될까요? 지난 포스팅에서 글루탐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된장의 발효에 대해 이야기 해드렸던 것, 기억하시나요? 혹시라도 아직 보지 못하신 분은 감칠맛에 관한 제 포스팅도 한 번 들어가서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화학연구원과 인기 먹방 크리에이터 쯔양 님이 함께 한 영상도 올라와 있으니 한층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

 


 

[감칠맛의 화학] 당신의 혀를 홀릴 '감칠맛'

[※ 본 컨텐츠는 한국화학연구원 제3기 케미러브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작성된 컨텐츠입니다.] 안녕하세요! 작년 케미러브 서포터즈 2기 활동에 이어서 올해도 또다시 케미러브 서포터즈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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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곡주나 전통 소주, 혹은 과일주가 만들어지는 기본 원리 역시도 ‘발효’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생물은 ‘아데노신3인산염(Adenosine Triphosphate, ATP)’ 라는 물질을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화폐로 활용합니다. 즉, ATP라는 분자에 에너지를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한 경우 ATP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죠. 따라서 모든 생물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살아 있는 동안 에너지원을 활용하여 ATP를 합성하는 반응을 끊임없이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과정이 바로 ‘세포호흡’입니다. 포도당을 원료로 하는 이 과정은 보통 해당과정, TCA 회로, 산화적 인산화라는 세 단계를 거쳐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를 통해 포도당 한 분자를 반응시켜 32 개의 ATP를 합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인 산화적 인산화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높은 에너지의 전자를 받아줄 산소 기체가 반드시 필요한데요. 따라서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는 산소를 활용하는 세포호흡이 정상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경우 생명체는 포도당을 이용해 ATP를 합성하기 위한 또 다른 반응을 일으키는데 그것이 바로 ‘발효’입니다.

특히 ‘효모’라는 미생물은 발효를 적극 활용하는 친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효모는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포도당을 분해하여 두 개의 ATP를 생산하는 발효 과정을 일으키는데요,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이산화탄소와 함께 에탄올이 생성됩니다. 따라서 당이 풍부하고 산소는 부족한 환경에 효모를 잔뜩 풀어두면 효모가 열심히 에탄올 발효를 일으키고 그 결과 에탄올이 점점 쌓이게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술을 제조하는 기본 원리입니다.

 

▶ '술'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

 

 

술의 원료는 보통 탄수화물을 다량 포함하고 있는 과일과 곡물입니다. 과일의 경우 함유되어있는 과당 자체가 에탄올 발효의 좋은 원료가 되는데요. 이 때문에 열매를 짓이겨 과즙을 낸 다음 이를 밀봉하여 발효시키면 술과 비슷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각종 와인이나 전통적인 사과주 [각주:1]를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제조하죠.

한편, 곡물의 경우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이 당이 아닌 전분의 형태로 저장되어있어, 그 자체로는 술을 만들 때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전분을 효모가 활용하기 좋은 당의 형태로 전환해주어야 하는데요. 몰트위스키나 맥주를 만들 때 ‘맥아(麥芽)’를 쓰거나 막걸리나 청주를 만들 때 쌀로 누룩을 빚는 것은 모두 이를 위한 과정입니다. 참고로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미츠하’의 가족들이 만드는 ‘쿠치카미자케’ (일명 미인주) 역시도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지는 술인데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술의 원료는 사람이 몇 번 씹었다가 뱉은 쌀을 모은 것인데, 타액 속의 아밀레이스(amylase)라는 효소가 쌀의 녹말을 당으로 분해하고 이 당이 에탄올 발효의 원료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고려하면 이론적으로는 나뭇가지로부터 술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도 가능한데요. 억새나 나뭇가지와 같이 식물에 많이 포함된 성분인 ‘셀룰로오스(cellulose)’를 ‘셀룰레이스(cellulase)’라는 효소를 이용하여 포도당으로 분해한 다음에, 이 포도당을 다시 효모를 통해 발효시킴으로서 술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글로만 보니까 도저히 상상이 안 가시죠? 그래서 한국화학연구원이 직접! 나뭇가지로 술을 만들어 보았는데요. 그 실험 영상, 한 번 감상하고 가실까요?

 

▲ 이 영상을 보시는 여러분들, 따라하시는 건 좋지만 절대!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얼핏 장난처럼 보이는 이 실험은 사실 세계적으로 굉장히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셀룰로오스는 낙엽이나 떨어진 나뭇가지에서 추출해낼 수 있는, 아주아주 흔한 물질인 반면 에탄올은 유망한 친환경 발전 시스템인 ‘연료전지(fuel cell)’의 훌륭한 연료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실험은 그 자체로는 활용도가 떨어지는 셀룰로오스를 인간에게 유용한 에탄올로 전환하는 시도인 셈이죠. 이처럼 자연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생명체의 부산물인 ‘바이오매스’로부터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을 얻어내려는 연구는 한국화학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도 금속 촉매와 전기를 활용하여 ‘에틸렌글리콜(ethylene glycol)’이라는 바이오매스 알코올의 일종을 ‘글리콜산(glycolic acid)’이라는 유용한 물질로 변환시키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소주 한 잔’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한편 한국 사람들의 영혼의 단짝이라 할 수 있는 소주 역시도 쌀이나 고구마 등의 곡물을 발효시켜 에탄올을 포함한 발효액을 만든 뒤, ‘증류’라는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술을 제조합니다. 여기서 ‘증류’란 물질의 끓는점 차이를 이용하여 혼합물을 분리하는 방법인데요. 발효액을 적절한 온도에서 가열하면 끓는점이 낮은 물질부터 순차적으로 끓어 나오는데, 이들 중 필요 없는 물질은 공기 중으로 날리고 에탄올 및 술 향의 핵심이 되는 물질만 적절히 냉각 장치를 통해 다시 액화시켜서 모으면 소주가 됩니다.

 

 

본래 한국의 전통 소주는 하나의 증류 용기에서 오로지 한 번만 증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제조가 됩니다. 이를 ‘단식증류’라고 부르는데요. 증류를 통해 얻어낸 소주의 에탄올 순도가 낮은 편인 대신 특유의 맛과 향을 내는 여러 분자들이 고스란히 소주에 담긴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힙합 아티스트 박재범 씨가 직접 설립하여 엄청난 유명세를 얻은 ‘원소주’가 바로 단식증류로 제조된 소주이죠. 하지만 이러한 증류식 소주는 원료의 품질과 누룩을 띄우는 기술력이 술맛에 큰 영향을 주고, 증류를 통해 얻는 에탄올의 순도가 낮아 대량생산이 힘들다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참이슬이나 처음처럼과 같이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주는 단식증류가 아닌 ‘연속증류’ 방식으로 제조됩니다. 연속증류란 발효액을 커다란 증류탑에 집어넣은 뒤, 연속적인 증류 과정을 통해 ‘주정’이라 부르는 고순도의 에탄올만을 뽑아내는 방식인데요. 오로지 에탄올만을 농축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원료로 쌀 외에도 타피오카, 감자, 말린 고구마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순수한 주정은 너무 도수가 높고 소독제 냄새 빼고는 아무런 맛과 향도 나지 않기 때문에,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정을 물로 희석한 다음 각종 향료와 감미료를 추가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흔히 단식증류를 통해 제조되는 소주를 ‘증류식 소주’, 연속증류를 통해 얻은 주정으로 만들어지는 소주를 ‘희석식 소주’라고 부릅니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증류식 소주 역시도 필요에 따라 증류로 얻어낸 원액을 희석하여 도수를 조절하는 반면, 희석식 소주도 원료인 주정은 증류를 통해서 얻기는 하지만, 이미 이러한 분류는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졌습니다. 특히 ‘증류식 소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마케팅이 이루어지면서, 소주 시장은 ‘증류식 소주’로 대변되는 ‘프리미엄 소주’ 시장과 ‘희석식 소주’로 대변되는 일반 소주 시장으로 양분되었죠. 물론 그렇다고 증류식 소주가 항상 희석식 소주보다 좋은 술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한때는 술을 좋아했었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소주 모두 각자만의 매력이 있는 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술은 위험하다. 당신 생각보다도 훨씬!

 

 

그런데 워낙 사람들이 술을 자주, 많이 마실뿐더러 대중매체에서도 음주 장면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무시무시한 사실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술은 국제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입니다. 이는 에탄올 자체가 위나 장의 점막을 자극할뿐더러, 에탄올이 체내에서 분해되면서 숙취의 원인물질이자 간독성을 지니는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de)를 생성하기 때문이죠. 또한 만성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케톤산증(ketoacidosis)이라는 합병증에 걸릴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금방 빨개지는 사람들은 더욱 술을 조심해야 된다는 통설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체내에는 에탄올을 분해하는 대사 과정을 촉진하는 ‘CYP2E1’이라는 단백질과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하이드로 전환시키는 효소인 ‘알코올탈수소효소(ADH), 그리고 부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의 분해를 담당하는 효소인 아세트알데하이드탈수소효소(ALDH)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CYP2E1의 개수 및 이들 효소의 분비량은 모두 유전적인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요. 즉, 관련 유전자의 활성이 덜 되어 있을수록 에탄올 해독 능력이 떨어지고, 조금만 술을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등의 신호가 나타나죠. 기본적으로 에탄올은 우리 몸 기준에서는 독극물이므로 여러 과정을 거쳐 무해한 물질로 분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해독 작용이 더디게 일어나니 몸에 더 큰 무리가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에탄올이 공식적으로 사람의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향정신성의약품의 위험도를 판단할 때에는 ‘얼마나 적은 양으로도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독성(toxicity)’과, ‘복용을 중단하였을 때 금단 증세가 얼마나 강력하게 오는가’를 나타내는 ‘의존성(dependence)’을 조사하는데요. 연구에 따르면 에탄올은 상당히 강력한 독성과 의존성을 가진 약물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에탄올은 어떻게 사람의 뇌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요?

 

▶ 악마가 만들어낸 음료 

유태인들의 경전으로 유명한 <탈무드>에는 술의 기원과 얽힌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최초의 인간’ 아담이 기르던 포도나무에 감명을 받은 악마가 이 포도나무에 양과 사자와 원숭이와 돼지의 피를 거름으로 뿌렸고, 풍성하게 열린 포도로 술을 담글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짐승의 피를 거름으로 쓴 탓에, 술을 마신 사람은 처음에는 양처럼 온순해지지만 조금 취하면 사자처럼 사납게 난동을 부리고, 더 취하면 원숭이처럼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다가 결국 만취하면 돼지처럼 더럽게 뒹굴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은 크게 중추신경계의 기능을 활성시키는 각성제와 저하시키는 억제제로 구분됩니다. 그렇다면 에탄올은 각성제일까요 아님 억제제일까요? 술을 마시면 성격이 활발해지거나 혹은 과격해지는 경우가 많으니 각성제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실은 에탄올은 억제제로 분류됩니다. 처음 몇 잔에는 양처럼 온순해진다는 탈무드의 표현이 마냥 틀리지는 않은 것이죠.

실제로 에탄올을 섭취하면 뇌의 여러 부분이 순서대로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뇌의 전두엽 부분이 점차 마비되고, 섭취량이 증가함에 따라 차차 측두엽과 후두엽에도 영향을 주죠. 술을 마시면 몸을 제대로 못 가누거나 눈앞이 빙빙 도는 것, 소리가 잘 안 들려서 말이 커지게 되고 혀가 꼬이는 것, 감정이 격해지거나 이성적인 판단력을 상실하는 것이 모두 전부 뇌의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지나치게 과한 에탄올 섭취는 결국에는 자발적인 호흡을 조절하는 숨뇌(연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요. 이 정도가 될 때까지 에탄올을 급하게, 그리고 많이 섭취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호흡이 마비되면서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급성 알코올 중독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폭음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의 대부분이 이 급성 알코올 중독 때문이라고 합니다.

 

 

에탄올이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 몸에서는 신경 기능 억제 신호를 유도하는 ‘감마-아미노뷰틸산(Gamma-Aminobutyricacid, GABA)’ 이라는 물질이 존재하는데요. 이 물질은 ‘GABAA 수용체’에 달라붙으면 각종 신경 작용을 활성화시켜 불안감을 억제하고 나른함과 졸음을 유발하며, 호흡계나 근육을 이완시킵니다. 그런데 에탄올은 이 GABAA 수용체에 달라붙어서, GABA가 붙었을 때와 비슷한 작용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리거나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죠. 놀랍게도 에탄올과 비슷한 기작, 즉 GABA 수용체에 달라붙어 졸음을 유도하는 물질이 바로 수면제로 자주 쓰이는 졸피뎀이나 플루니트라제팜인데요. 이러한 종류의 수면제를 술과 함께 복용하면 중추신경이 과도하게 억제되어 생명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으니 절대로 함께 복용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에탄올은 글루탐산염이라는 신경계 흥분 유도 물질과 결합해 활성화되는 NMDA 수용체의 기능을 억제합니다. 이 수용체는 뇌의 인지기능 및 기억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술을 마시면 전날의 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 소위 ‘필름이 끊기는’ 이유가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한편, 에탄올을 만성적으로 섭취하면 글루탐산염에 대한 NMDA 수용체의 민감도가 매우 높아지는데요. 이 경우 글루탐산염이 소량만 존재하더라도 신경세포가 과도하게 흥분하여 사멸하는 ‘흥분독성’이 증가하여 매우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탄올이 도파민과 세로토닌, 엔도르핀과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의 분비량과 수용체의 수에도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있는데요. 이 신경 전달 물질들은 쾌락과 행복감, 성욕 등을 증진시키므로 단기적인 음주는 이러한 감정을 증폭시키지만 습관적인 음주는 오히려 이들 물질의 농도를 낮추거나 수용체의 수를 감소시켜서 이들 물질에 대한 민감성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이전과 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이전만큼 동일한 만족감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는 뜻이죠. 이러한 경향은 끊임없이 술을 갈구하고 한 번에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하는 등 술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에탄올 중독으로 이어지며, 술을 마시지 않는 상태에서 우울증이나 정서 불안을 유발하여 일상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 폭탄주, 당신을 망가뜨릴 폭탄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결국 핵심은 폭음과 반복적인 음주가 간과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따라서 주량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하게 술을 마시기 보다는, 본인의 주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의식적으로 술을 마시는 횟수를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또 한 가지 피해야 하는 나쁜 음주 습관은 소주와 맥주를 섞는 폭탄주, 소위 ‘소맥’을 만들어 마시거나 혹은 술과 탄산음료를 섞어서 마시는 것인데요. 이렇게 도수가 높은 술을 탄산이 있는 맥주나 음료와 섞을 경우 ⓵ 술의 도수가 위 점막에서의 에탄올 흡수가 가장 빨라지는 15~20도 정도로 희석되고 ⓶ 맥주 혹은 음료에 녹아 있던 이산화탄소가 에탄올의 체내 흡수 속도를 늘려서 더 빠르게 술에 취하도록 유도한다고 합니다. 주취 상태에서는 자제력을 쉽게 잃고 더 빠르게 술을 마시게 되니 그만큼 폭음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죠. ⓷ 무엇보다 독주에 약한 술을 섞거나 혹은 음료수를 섞으면 흔히 소독약 냄새라 불리는 에탄올 특유의 역한 향이 가려지고 점막을 자극하는 느낌, 소위 ‘목넘김’이 부드러워져 더욱 술을 많이 마시게 됩니다.

 

▶ 우리는 술을 왜 마시는가?

 

 

사실 ‘향정신성의약품’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술은 분명 인간의 훌륭한 동반자입니다. 적당히 즐기기만 한다면 사람 사이의 관계를 급속도로 가깝게 해주거나, 하루의 노곤함을 사르르 녹여주거나, 혹은 음식의 맛을 한층 돋구어주기도 하죠! 저도 삶의 버킷리스트 중 한 가지가 수도원에서 소량 양조하는 맥주를 가리키는 ‘트라피스트 에일(Trappist Ale)’을 벨기에 현지에서 직접 먹어보는 것일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편이구요😊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며 잠에 곯아떨어져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술을 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해요:)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술을 왜 마시는가?’를 한 번만 곱씹더라도 훨씬 술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술을 마셔야”하는 것이지,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것이 아니니까요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부터 사람이 어떻게 취하는지까지 훑어본 오늘의 컨텐츠, 재밌으셨나요? 다음 번에도 더 알차고 재미있는 화학 컨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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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다 : <a href="https://www.flaticon.com/free-icons/cider" title="cider icons">Cider icons created by Freepik - Flaticon</a>
- 위스키 : <a href="https://www.flaticon.com/free-icons/whisky" title="whisky icons">Whisky icons created by Nhor Phai - Flaticon</a>
- 잔 맥주 : <a href="https://www.flaticon.com/free-icons/beer" title="beer icons">Beer icons created by Freepik - Flaticon</a>
- 쌀가루 : <a href="https://www.flaticon.com/kr/free-icons/" title="쌀 아이콘">쌀 아이콘  제작자: Freepik - Flaticon</a>
- 누룩 : <a href="https://www.flaticon.com/kr/free-icons/" title="누룩 아이콘">누룩 아이콘  제작자: Freepik - Flaticon</a>
- 발효기 : <a href="https://www.flaticon.com/free-icons/fermentation" title="fermentation icons">Fermentation icons created by Flat Icons - Flaticon</a>
- 증류기 : <a href="https://www.flaticon.com/free-icons/distillation" title="distillation icons">Distillation icons created by surang - Flaticon</a>
- 단식 증류 : <a href="https://www.flaticon.com/kr/free-icons/" title="증류 아이콘">증류 아이콘  제작자: Freepik - Flaticon</a>
- 연속 증류 : <a href="https://www.flaticon.com/free-icons/distillation" title="distillation icons">Distillation icons created by Good Ware - Flatic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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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잔을 든 손 : <a href="https://www.flaticon.com/free-icons/food-and-restaurant" title="food-and-restaurant icons">Food-and-restaurant icons created by Freepik - Flaticon</a>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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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섭, “술마신뒤 두통은 메틸알콜 성분 때문/메틸알콜이 뭐길래”, 중앙일보, 1992년 6월 6일 수정. 2022년 8월 31일 접속. https://news.joins.com/article/2716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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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지민, “'폭탄주' 마시면 왜 더 빨리 취할까?”, 헬스조선, 2019년 5월 11일자. 2022년 8월 31일 접속.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0/2019051001366.html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유성호 교수님 〈죽음의 과학적 이해〉 강의 中 ‘008_중독’ 강의록.

 

 
 

 

  1. 외국에서 ‘사이다(cider)’라고 부르는 그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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