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컨텐츠는 한국화학연구원 제2기 케미러브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 모기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푹푹 찌는 더위와 기분까지 눅눅해지는 장마, 한 번씩 강풍과 폭우로 쑥대밭을 만들어놓는 대풍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여름을 짜증나게 하는 요인을 꼽으라고 하면 모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잠을 자려고 누울라 치면 귓가를 맴돌며 경박하게 '엥엥'거리는 것은 물론, 방심한 사이에 피를 쪽 빨아먹고 도망가는 모기는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죠.
모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인간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왔습니다. 약을 풀거나 향을 피우는 것은 기본이고 전기가 흐르는 파리채, 레이저까지 활용하고 있죠. ‘모기가 사라지는 그날까지’를 표어로 모기를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거나 고문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엽기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의 존재는 모기에 시달리는 인간들의 광기(?)가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엄청 커다란 모기가 내 발을 물었을“ 때 괴로운 것은, 녀석이 피를 빤 자리에 남는, 긁어도 사라지지 않는 가려움입니다. 도대체 왜, 모기에 물린 자리는 가렵게 느껴지는 걸까요?
▶ '가려움'의 과학
우리 몸에는 ‘히스타민(histamine)’이라는 물질이 끊임없이 피를 타고 흐르고 있습니다. 히스타민은 인간의 필수 아미노산 중 하나인 히스티딘이 여러 변화를 거쳐서 생성되는 물질로, 체내에서는 대부분 비만세포 속에 가득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우리의 몸에 알러지를 유발하는 물질과 같은 외부 자극이 가해지면, ‘특이 IgE-FcεRI 반응’이라는 과정을 통해 비만세포 밖으로 히스타민이 방출됩니다. 이렇게 방출된 히스타민은 체내에 존재하는 네 종류의 '히스타민 수용체 (H1R ~ H4R)'에 달라붙어서, 서로 다른 반응들을 활성화시키는데요.
① H1R에 붙는 경우 기관지를 수축시키고 혈관을 확장시키며, 통각을 유도하고 면역 반응에서 신호 전달을 담당하는 물질들인 ‘사이토카인’의 분비를 촉진합니다.
② H2R에 붙는 경우 위산 분비가 촉진되고 호흡기의 점액 분비를 촉진시키며, 심박수를 증가시키고 T세포(※ 우리 몸의 면역에 관여하는 세포로, 외부에서 병원균 등이 침입하면 이를 직접 파괴하기 위해 공격하거나 혹은 그 외부의 적을 기억하는 세포) 증식을 촉진합니다.
③ H3R에 붙는 경우 세로토닌이나 노르아드레날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을 감소시킵니다.
④ H4R에 붙는 경우 백혈구의 성숙을 유도하고, 케모카인을 비롯한 다양한 사이토카인의 분비를 통해 면역 반응을 촉진합니다. 2
연구에 따르면 히스타민은 H1R과 H4R 수용체에 결합하였을 때 모종의 전기적 신호를 만들어냅니다. 이 전기적 신호는 ‘가려움’이라는 감각을 전담하는 일련의 신경 전달 회로를 통해 뇌로 전달해, 우리가 ‘가렵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요. 특히, 이 연구에 따르면 오직 히스타민에 의해서만 활성화가 되는 ‘가려움 전달 경로’와 히스타민과 무관하게 활성화가 되는 ‘가려움 전달 경로’라 공존한다고 합니다. 즉, 히스타민은 그 자체만으로 ‘가려움’을 느끼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 모기가 '개미산'을 쏜다고요?
다시 모기 얘기로 돌아와서, 모기는 사람의 혈관에 침을 박아서 피를 빨아먹는 동안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히루딘(hirudin)이라는 물질을 타액을 통해 분비합니다. 거머리가 피를 빨 때 분비하는 물질이죠. 그런데 이 물질이 체내에 들어오면 면역 반응이 활성화되면서 위에서 설명한 히스타민이 분비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히스타민을 매개로 한 가려움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려운 부분을 긁거나 손톱으로 십자가를 만드는 행위, 침을 바르는 행위는 모기에 물린 사람들이 가려움을 경감하기 위해 종종 하는 행동들입니다. 그런데 가려움이 생기는 원리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런 행동은 2차 감염을 유발하고 면역 반응을 더욱 촉진시켜 오히려 물린 부위를 더 가렵게 만들 수 있죠. 뿐만 아니라 감염이 치유되고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딱지가 앉을 수도 있다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일부 매체에서는 가려움을 유발하는 모기의 타액 성분이 ‘포름산(formic acid)’ 이라고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이 가끔 등장합니다. 이 포름산은 ‘개미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식초의 원료인 아세트산보다도 강한 산으로, 개미나 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일종의 독이에요. 개미에게 물리거나 벌에 쏘여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물질에 노출되면 가려운 것이 아니라 따갑거나 열감을 동반한 통증을 느낍니다.
포름산이 산성인 데다가 40℃ 이상의 온도에서 쉽게 변성되므로, 뜨거운 물로 데운 티스푼을 상처부위에 대거나 혹은 염기성인 비눗물로 상처 부위를 세척하면 가려움이 사라진다는 민간요법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설명했듯 가려움을 유발하는 모기의 타액 성분은 포름산이 아닌 히루딘이므로 당연히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심지어 위에도 언급된 연구에 따르면 메커니즘은 불명확하지만 물린 부위를 따뜻하게 하는 것이 외려 가려운 느낌을 더욱 증가시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온찜질은 절대 금물이겠죠?
한편 같은 연구에 따르면 물린 부위의 온도를 낮추는 것, 혹은 멘톨 등의 물질을 이용해 냉각을 시킨 효과를 내는 것은 가려운 느낌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냈다고 합니다. 온도를 낮추는 것은 염증 반응을 느리게 하는 효과도 존재하는데요. 실제로 모기용 물파스에는 항히스타민제인 디펜히드라민과 더불어 멘톨과 같이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감기약이 졸린 이유는?
한편 위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 히스타민은 여러 방면으로 면역 반응에 관여하는데요. 이러한 히스타민 매개의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아토피나 알러지성 비염, 천식과 같은 알러지입니다.
결막염, 코감기, 알러지성 비염, 천식 등의 증상이 발병해서 병원을 간다면 처방해주는 것이 '항히스타민제'인데요. 항히스타민제는 앞에서 설명한 H1 혹은 H2 수용체에 히스타민과 경쟁적으로 결합하여, 히스타민에 의한 염증 작용을 감소시켜주는 물질들을 의미합니다.
항히스타민제는 개발 시기에 따라 1세대와 2세대로 분류됩니다. 알러지성 비염 환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지르텍’이 대표적인 2세대 항히스타민제죠.
다만 항히스타민제도 부작용이 존재하는데요.
① 1세대 항히스타민제의 경우 아세틸콜린이라는 물질의 수용체에도 경쟁적으로 결합하여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방해하는데 이를 항콜린(anticholinergic) 작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세틸콜린은 부교감신경의 신경전달 물질이고, 부교감신경이 억제되면 소화액 분비량이 적어지고 소화관 연동 운동이 저하되며 호흡기 근육이 이완되어요. 따라서 입이 마르거나 속이 메스꺼울 수 있고, 심지어는 배뇨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드물게는 시력에 장애가 오는 경우도 생깁니다.
② H2 수용체에 결합하는 항히스타민제의 경우, 히스타민이 위산 분비를 촉진하는 물질이므로 위산 분비를 억제해 소화불량이 생기기도 합니다.
③ 심장의 이온 통로에 영향을 미쳐 부정맥을 유발하는 등 과용할 경우 심장에 무리가 갈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일부 항히스타민제는 이를 이유로 판매가 중단이 되기도 했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부작용은 바로 졸음입니다. 히스타민은 H1 수용체와 결합하여 수면-각성 주기에서, 낮 시간 동안 각성 효과를 내는 물질로 알려져 있는데, 항히스타민제가 수용체에 결합하면 각성 효과가 줄어들면서 졸음 및 피로감, 운동 능력 저하 등이 유발됩니다. 뿐만 아니라 연구에 따르면 야간에 복용하더라도 렘수면에 접어드는 시간을 증가시켜서 다음 날의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해요.
항히스타민제 복용 주의사항 중 하나가 복용 후 운전 및 집중을 요하는 기계 작업을 금지한다는 것일 정도로 졸음을 유도하는 능력(?)은 굉장히 강력한데요. 실제로 ‘디펜하이드라민’과 같은 일부 항히스타민제는 오히려 수면유도제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부 환자들은 오히려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면 중추신경이 흥분되어 불면증 및 불안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고 해요. 여하튼 이러한 항히스타민제의 중추신경계에 대한 효력을 대폭 감소시켜 부작용을 크게 줄인 것이 2세대 항히스타민제로,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의 병원에서 2세대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고 있습니다.
▶ ‘없어져야 할 것’이 있을까?
1960년대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은 당시 중국의 전반적인 위생상태를 개선하고 빈곤을 이겨내겠다는 명목 하에 ‘제사해 운동’이라는 국가 단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제사해 운동은 공산당 정부가 지정한, ‘중국 인민에게 해가 되는’ 네 종류의 동물들을 완전히 박멸해버리겠다는 야심만만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네 종류의 동물이 무엇인고 하니, 쥐, 모기, 파리, 그리고 참새였죠.
중국의 인민들은 국가의 혁명 지도자들의 말을 너무나도 잘 들었습니다. 실제로 중국 내의 쥐와 모기, 파리, 참새는 거의 멸종 위기까지 갈 정도로 그 개체수가 줄어들었죠.
문제는 참새가 멸종하면서, 참새가 잡아먹던 해충들, 특히 엄청난 무리를 지어다니면서 곡식을 게걸스레 먹어 치우는 메뚜기 떼가 중국 전역에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논밭에는 남아나는 게 없었고, 이는 중국의 인민들이 유례없는 대기근에 시달리는 연유 중 하나가 되었죠.
모기는 단순히 우리의 피를 빨아먹고 가렵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위생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백신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 그런 사례가 많지 않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모기가 매개가 되어 전염되는 뇌염이나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이렇게만 들으니 모기는 인간에게 백해무익한 곤충인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러니 마오쩌둥도 제사해 운동에 ‘모기’를 포함시켰던 것이겠죠? 실제로 최근에도 과학자들은 모기의 유충을 잡아먹는 천적은 물론, 더 나아가 번식을 할 수 없거나 혹은 애벌레 상태에서 ‘자멸’을 하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모기를 자연에 풀어서 모기의 개체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시도는 나름의 효과를 거두고 있죠.
그런데 모기가 정말로 그렇게 멸종해버려도,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생태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멀쩡하게 돌아갈까요? 마오쩌둥은 참새를 없앨 때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위에서도 말했듯 참담했습니다. 모기 역시 마찬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개입이 무엇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막상 현실이 닥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죠. 정교하게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서 무언가를 건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 하나만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 역시도 아주 정교하게 돌아가고 있는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히스타민이라는 물질은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중요한 성분 중 하나이죠. 때로는 이 물질이 한여름의 모기들 마냥 우리를 번거롭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여러 물질들과 상호 작용하며 우리를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없어서는 안 될 물질입니다.
항히스타민제의 남용으로 우리 몸이라는 시스템에서 히스타민을 제거했을 때, 단순히 히스타민에 의한 피해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히스타민의 존재와 항히스타민제의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항상 ‘적당한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 한층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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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우, "염증과 히스타민, 그리고 항히스타민제", 한국의약통신, 2017년 4월 6일 수정. 2021년 8월 1일 접속. http://www.km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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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혜연, "[약 이야기]모기 가려움증 해결할 최고의 방법 '이것'", 중앙일보 헬스미디어, 2018년 8월 6일 수정, 2021년 8월 1일 접속. https://jhealthmedia.joins.com/_inc/pop_print.asp?pno=19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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