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컨텐츠는 한국화학연구원 제2기 케미러브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 도핑, 반복되는 오명의 역사
2021년 8월 6일, 고대하던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브라질과의 도쿄올림픽 4강전이 열리던 날, 돌연 브라질 여자배구 대표팀의 한 선수가 도핑테스트에 적발되었다는 뉴스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인 ‘오스타린(Ostarine)’이 검출되었다는 것이죠. 비록 이로 인해 경기 일정이 변동된다거나 몰수패가 이루어지는 등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입에 ‘도핑’이 또다시 회자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사실 스포츠에서 도핑 적발과 연관된 오명의 역사는 유구합니다. 당장 러시아만 하더라도 선수단 내에서 조직적으로 도핑 약물을 디자인 및 복용한 정황이 밝혀지면서, 2020 도쿄올림픽에 ‘러시아’라는 국가명을 달고 나오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죠. 2019년 6월에는 KBO에서 활동한 전직 야구 선수 A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야구교실에서, A씨가 유소년 학생들에게 강제로 도핑을 실시한 것이 밝혀져 야구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고요. 2019년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도핑 양성 전력 및 테스트 회피 의혹이 있는 선수와의 인사 및 수상을 거부한 ‘패싱’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고, 2016년에는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역도 94kg급에 출전한 21명의 선수 중 금, 은, 동메달리스트를 포함한 7명의 선수가 도핑에 적발되면서 뒤늦게 5위였던 선수가 금메달, 8위였던 대한민국의 김민재 선수가 은메달을 받게 된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고환암을 이겨내고 사이클계의 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7연패를 달성하며 사이클 계의 전설이자 인간승리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랜스 암스트롱은 도핑 전력을 시인하면서 한순간에 명예가 땅바닥으로 추락했으며, 2007년에는 미국의 ‘상원 의원’인 조지 J. 미첼이 발표한 ‘미첼 리포트’를 통해 MLB 역사 한 켠이 ‘약물의 시대’로 장식되는 치욕을 맛보았고, 동시에 여러 전설적인 선수들의 이미지가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로이더’들은 누구인가?
운동선수들이 가장 많이 손대는 약물은 위에서 언급한 브라질 대표팀의 여자배구 선수도 사용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입니다.
본래 스테로이드는 특정한 구조를 가진 유기 화합물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포도당이나 과당, 젖당 등을 우리가 뭉뚱그려 ‘당류’라고 부르듯이 경기력 향상 약물을 포함한 여러 물질을 통칭하는 용어이죠. 인간의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 또 건강 프로그램에서 우리 몸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며 자주 언급되는 콜레스테롤이 모두 대표적인 스테로이드의 예시입니다.
스테로이드는 체내에서의 기능에 따라 다시 여러 하위분류로 나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코르티솔 스테로이드’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입니다.
코르티솔 스테로이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비되는 ‘코르티솔’과 유사한 스테로이드로, 면역 작용을 억제하고 혈관을 수축시키며 염증 반응을 저하시켜 항염, 항알러지 약물로 널리 쓰입니다. 이 때문에 감기약, 여드름, 피부염 연고나 결막염 안약, 비염용 스프레이 등에 널리 사용되죠. 반대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체내의 ‘동화작용(anabolism)’과 연관이 있다 하여 이름이 붙은 물질로, 근육의 합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이 근육을 증가시키는 원리는 아래와 같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성호르몬처럼 단백질 합성(동화작용)을 촉진시켜 근육 세포를 합성시키고 근육의 양과 근력을 늘어나게 한다.
2) 코르티솔 스테로이드와 경쟁하여 근육 세포의 분해(이화작용, catabolism)를 저하시킨다.
이처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을 투여할 경우 적은 시간, 작은 무게의 근력 운동으로도 더 많은 근육량을 얻을 수 있고, 이에 더해 근육의 회복 속도도 빨라져 휴식 없이 더 많은 시간 동안 근력 운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곧 자신의 능력과 들인 노력 이상으로 빠르게 더 많은 근육을 붙일 수 있는 효과로 이어지죠.
이 때문에 남들보다 우월한 근육량을 자랑하는 것이 중요한 보디빌딩 종목과 압도적인 근력을 필요로 하는 파워리프팅 계열의 종목 선수들은 더더욱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에 대한 유혹에 쉽게 빠지는데요. 특히 보디빌딩의 경우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을 활용하여 몸을 만든 사람들을 ‘로이더’,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을 ‘내추럴’이라고 구분할 뿐 아니라, ‘내추럴 대회’를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선수들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입니다.
▶ 근육도 ‘기억’을 한다?
이러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더욱 커진 데에는 소위 ‘머슬 메모리 이론’ 의 등장이 주요했는데요. 이 이론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생리학자 크리스티안 군데르센 교수가 주창한 이론으로 인터넷 등지에서는 ‘한 번 만든 근육은 10년 동안 유지된다’, ‘어렸을 때 한 번 약물을 먹고 나면 성인이 되어서도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데르센 교수의 정확한 연구 내용은, 대표적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계열 물질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을 투여한 쥐와 투여하지 않은 쥐를 훈련시킨 뒤 비교했더니 근섬유 단면의 두께와 근육 속의 ‘핵(myonuclei)’의 개수가 약물을 투여한 쪽이 월등히 높았으며, 약물 투여와 훈련을 3개월이 지난 후에도 근육 속 핵의 개수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핵이 근섬유의 두께 및 근육 형성에 관여하므로, 약물로 인해 핵이 많이 생성된 상태가 유지될수록 근력 운동을 쉬었다가 재개했을 때 적은 운동으로도 더 빠르게 근육을 불릴 수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죠.
‘약효가 10년 동안이나 지속된다’는 이야기는 쥐와 인간의 수명을 고려해보면 쥐에게의 3개월이 인간에게의 10년 정도에 해당한다는 연구자의 추측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요. 다른 말로 하면, 본래의 논문에서는 인간을 대상으로는 근육의 핵의 수가 증가하는 효과가 실제로 얼마나 지속되는지 정확히 검증된 적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실제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이 근육의 성장에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고, 쥐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가지는 의의를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그 효과가 복용을 끊고 난 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합니다.
▶ 무궁무진한 도핑의 세계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경기력 강화 약물 계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외에도 경기력을 향상시켜주는 약물의 종류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약물 중 하나가 바로 ‘에리트로포이에틴(erythropoietin)’, 속칭 ‘EPO’입니다. EPO는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숙성되는 과정에 관여하는 단백질로, 체내에서 소량 합성되며 체내 산소 농도와 연관된 피드백 과정에 따라 분비량이 조절되는 물질입니다. 따라서 본래는 이를 합성하거나 양을 조절하는 기작에 이상이 생겨 EPO가 부족한 만성 빈혈 환자 등에게만 약물이 처방되는데요. 그런데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수치보다 적혈구가 많아지는 경우, 건강에는 큰 무리가 없으면서도 산소를 운반할 도구가 많아지므로 심폐지구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됩니다. 따라서 적혈구 수치가 정상적인 사람에게 EPO는 심폐지구력을 강화할 수 있는 약물로 작용할 수 있죠.
이를 간파한 선수들, 특히 심폐지구력이 필수적인 사이클이나 수영, 장거리 마라톤 선수들에게 EPO라는 약물을 알게 된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체내의 적혈구 수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산소가 희박한 고지대에서 전지훈련을 하거나 심지어는 경기가 있기 며칠 전 미리 피를 뽑아서 냉장보관 한 뒤 경기 몇 시간 전 그 피를 수혈받는 ‘자가수혈’까지 감행했던 선수들에게, EPO는 매우 간단하고 안전한 도핑 방식이었죠. 결국 선수들이 너도나도 EPO를 복용한 후 대회에 참가하면서, 사이클계 역시도 MLB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대약물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완주에 걸리는 시간이나 선수들의 평균 속력 등의 기록이 대폭 갈아치워졌죠.
그런가 하면 신체가 아닌 정신을 강화시켜 주는 약물도 있습니다. 가령 이전 포스팅에서도 소개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었던 제이미 바디가 애용하는 각성제인 ‘카페인’은 금지 약물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세계반도핑기구(WADA)에서도 예의주시하는 물질인데요. 2008년에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WADA는 총 62종류의 각성제를 금지 약물로 지정했었는데, 심폐 기능 및 근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집중력을 향상시키거나 긴장감을 풀기 위해 이러한 약물들을 복용하는 선수들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메클로페녹세이트(meclofenoxate)’인데, 이 약물의 경우 주의력에 영향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촉진합니다. 따라서 본래는 노화에 의한 치매를 겪는 환자들에게 처방되는데요. 일부 운동 선수들은 각성 효과 및 집중력 향상을 위해 이 약물을 악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무혐의로 종결되기는 했지만 올해 여름 한동안 야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던, 두산 베어스 구단의 A 선수의 도핑 의혹이 바로 이 물질의 대사 산물인 '4-CPA'라는 물질이 도핑 테스트에서 검출되어서 발생한 해프닝이었습니다.
특히 체스, 바둑, e스포츠와 같이 두뇌를 쓰는 것이 중요한 경기들이 비로소 스포츠로 인정받게 된 최근에는 이런 향정신성 약물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나 EPO와 비슷하게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중대한 요소가 될 수 있어 더욱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의 치료제로 쓰이는 ‘애더럴(Adderall)’의 경우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하는 ‘암페타민(amphetamine)’이라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일반인이 복용할 경우 강력한 진정효과 및 각성효과, 반응 속도의 비약적인 향상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2015년에는 한 FPS 게임 프로 선수가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이 약물을 복용하였음을 고백하면서, 비교적 최근에 들어와서야 시장이 커진 e스포츠계 까지도 벌써부터 도핑의 마수가 뻗어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 대가 없는 ‘강함’은 없다
사실 도핑이 유구한 문제인 만큼, “도핑 행위는 왜 비윤리적인가?”에 대한 논쟁 역시도 꽤나 오래전부터 이어져왔습니다. 도핑을 규제해야 한다는 측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바로 ‘스포츠 정신의 훼손’인데요. 즉, ‘공정한 경쟁’이라는 기치 하에서 이루어지는 스포츠에, 노력의 가치를 평가절하시키는 도핑이라은 행위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물론 이에 대해 ‘그렇다면 모두가 공평하게 도핑을 하는 것은 왜 문제인가?’ 혹은 ‘선수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 주변 환경과 재력에 따라 훈련 환경, 사용하는 장비, 먹는 음식 등이 모두 다를텐데 진정한 의미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는가?’라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도핑을 규제해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또 한 가지 강력한 논거는 바로 도핑이 허용될 경우 ‘결과를 내기 위해 선수의 건강을 해치는 풍조’가 생길 가능성 높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역시 ‘금지약물’에 단순히 선수의 경기력을 강화하는 약물들만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건강을 해칠 염려가 현저한 약물’들도 포함시키고 있는데요. 전 롯데 자이언츠 소속 외국인 용병이었던 짐 아두치 선수가 복용했던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코돈(oxycodone)’이나 현 NC 다이노스 소속의 이용찬 선수가 사용했던 피부병 치료제인 ‘베타메타손(betametasone)’ 등이 이로 인해 금지약물로 지정된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류의 약물들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지만, 오남용 부작용도 특히 심각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대표적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운동에 필요한 근육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근육까지 성장시킨다. 안면 근육이 변형되어 외형이 달라지거나 심장 혹은 내장 근육까지 발달하여 심장병 등이 유발되기도 한다.
2) 소위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LDL-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서 심혈관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증가한다.
3)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여드름이 나거나 탈모가 생길 수 있으며 남성의 경우 여유증에 걸릴 수도 있다, 여성의 경우 생리 불순이 찾아오거나 목소리 변화, 수염 발모, 성기의 남성화 등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4) 남성의 경우 외부에서 주입되는 테스토스테론 양이 많아지면 체내에서 저절로 호르몬 생산량을 감소시킴. 이로 인해 고환이 위축되거나 정자 생산량이 대폭 감소하고 발기부전이 일어나는 등 성기능이 확연히 감소. 심지어는 고환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실제 앞서 언급한 사이클계의 전설이었던 랜스 암스트롱의 고환암 발병 원인이 습관적인 성장 호르몬 도핑일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5) 스테로이드성 약물은 뼈에도 영향을 미쳐 골다공증, 무혈성 괴사 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외에도 간암, 영구적인 신경 손상, 피부조직 괴사 등의 부작용 사례들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사용하는 약물의 양은 의학적으로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때의 양보다 적으므로 건강에 큰 위협을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하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확실한 것은 어떤 선수들에게 도핑은 마약과도 같다는 것입니. 약물의 힘을 빌려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성취하고 나면, 이후에는 그 퍼포먼스를 지속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약물을 오남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지적은 분명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들이 ‘대가 없는 강함’을 얻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자신의 몸을 갉아먹고 있다면, 이를 누군가는 나서서 막아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 혹시 당신도 ‘로이더’입니까?
앞서 e스포츠 분야에서 도핑 관련 이슈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문제의 약물 ‘애더럴’의 이름이 익숙하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 약물은 대한민국에서는 단순히 운동선수들의 도핑에 걸리는 약물일 뿐만 아니라, 향정신성 약물로 분류되어 제조부터 반입, 처방, 소지까지 엄격히 금지되는, 소위 ‘마약’으로 분류되는 약물인데요. 그러다보니 해외에서 이 약물을 밀반입하다가 걸린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간혹 뉴스에 등장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 약물이 대한민국에서 악명을 떨치게 된 가장 결정적 계기는, 과거 일부 학부모들과 고시생들을 중심으로 이 약물이 ‘집중력을 높여 공부를 잘하게 만들어주는 약’으로 소문이 나서 암암리에 오남용이 이루어진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수험생들이 전문지식도 없이 일종의 ‘자가 도핑’을 실시한 것이죠.
최근에는 ‘자기관리’가 중요한 트렌드로 급부상하면서, '벌크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열심히 가꾼 몸매를 멋진 포즈와 함께 사진으로 남기는 ‘바디프로필’을 찍는 것을 버킷리스트에 담아놓은 20~30대들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죠. 그러나 바디프로필을 찍기 위해 지겨운 식단 관리를 감내하고 고된 운동을 반복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자 일부 악질 헬스 트레이너들은 멋진 몸을 향한 열망과 식단과 운동에 대한 번거로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틈을 노려 ‘한탕’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요. 바로 “벌크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피트니스짐의 회원들에게 이러한 불법 약물을 암암리에 권하는 것입니다. 2019년 ‘약투 운동’이라고도 불린 일련의 폭로전을 통해 밝혀진 이러한 피트니스계의 추악한 민낯은 공중파 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에까지 방영될 정도로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죠.
문제는 누군가가 약물을 권하여서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멋진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부작용을 알고도 도핑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아직도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구매처나 유통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버젓이 존재하고 최근까지도 게시글이 업로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가수 겸 운동인 김종국 씨는 한 영상에서 바디프로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자기만족이긴 하지만, 왜 인생을 사진 한 장에 거냐는 이야기야...
인생은 끊기지 않는 동영상이야. 계속 이어가는 동영상으로 살아야지.”
물론 이 발언이 나온 맥락은 도핑과는 전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사진 한 컷을 찍기 위해 수분까지 말려가며 무리한 관리를 하는 것보다는, 무리하지 않고 꾸준하게 평생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그의 운동 철학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그의 충고를,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어 도핑에 손을 대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더라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참고로 2021년 6월 29일 자로 국회 본회의에서 ‘약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전문의약품을 취급할 자격이 없으면서도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을 유통한 사람은 물론이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 약물을 구매한 사람들까지도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약물의 오남용으로 인해 망가질 건강을 걱정하기 이전에, 당장 빨간 줄이 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죠.
순간의 사진을 위해 인생의 동영상을 빨리감기 해버리는 미련한 짓을 하는 사람이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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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기, “스테로이드 어떻게 사용하나요?”, 정신의학신문, 2015년 12월 8일자. 2021년 9월 29일 접속.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25
- 강찬(Chan Kang) et. al. 스테로이드를 투여한 실험용 쥐에서 대퇴 골두와 고관절의 초기 변화, 대한정형외과학회지 44(1): 8-13. http://www.riss.kr/link?id=A76358279.
- 유수인, "근육 키우려고 '불법 스테로이드' 손대는 사람들", 쿠키뉴스, 2021년 5월 6일 수정, 2021년 9월 29일 접속. https://v.kakao.com/v/20210506105502217
- 이승우, "전문의약품 불법 구입자도 처벌... 국회 본회의 통과", 의협신문, 2021년 6월 29일 수정, 2021년 9월 29일 접속. https://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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