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신이 아닌 한, 또 그렇게 될 수 없는 한, 길은 책에 있음에..."
2020년, 전역을 기념하여 선물로 받은 책에 아버지께서 적어주신 말씀입니다.
부끄럽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해 왔습니다.
전역한 이후에도 아버지의 말씀을 머리에는 새기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게을렀었죠.
이제는 다시금 책을 잡고, 책이 보여주는 여러 골목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이곳에 남기고자 합니다.
▶ 책 제목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지은이 : 김초엽
▶ 출판사 : 허블
▶ 짧은 독후감
필자는 SF 장르의 소설을 그닥 선호하지 않는다. 그동안 보아왔던 SF 소설에서는 언젠가의 먼 미래에는 등장할 법한 기술들을 나열하고, 그 기술들로 인해 만들어진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에서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플롯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영화나 만화로 충분히 더 실감나고 생생하게 볼 수 있기에,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이 소설은 뭔가 독특하다. '기술'과 그 기술이 빚어낸 미래의 세계를 그려내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저자가 자연과학을 전공한 만큼 구현이 가능할 기술에 대해 일장연설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기술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이야기에 더 집중한 느낌이었다. 또한 기술의 발달에도 여전히 소외될 사람들, 혹은 발생하게 될 부작용에 대해 그려내고 있지만 마냥 암담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SF 소설 치고는 굉장히 따뜻한 감성이 녹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필자는 '과학기술은 가치 중립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똑같은 칼을 일식 요리사가 잡으면 모두의 미각을 황홀하게 만드는 진수성찬이 차려질 수 있지만, 살인 청부업자가 잡으면 유혈이 낭자하는 살인이 발생할 수 있다. 과학기술은 인류의 손에 쥐어진 칼이다. 그것을 어떻게 쓸지 인류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자연과학과 공학 만으로는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여러 편의 소설에 그러한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데, 이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역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닿을 수 있는 우주가 확장되고 우주로 나아가는 것이 일상화된다고 했을 때, 그 우주에서 또 누군가는 소외될 수도 있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안나의 물음이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옆을 돌아보지 않는 폭주기관차와 같은 기술 발전에 대한 메시지를 한 마디 문장에 녹여낸 점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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