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신이 아닌 한, 또 그렇게 될 수 없는 한, 길은 책에 있음에..."
2020년, 전역을 기념하여 선물로 받은 책에 아버지께서 적어주신 말씀입니다.
부끄럽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해 왔습니다.
전역한 이후에도 아버지의 말씀을 머리에는 새기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게을렀었죠.
이제는 다시금 책을 잡고, 책이 보여주는 여러 골목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이곳에 남기고자 합니다.
▶ 책 제목 :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지은이 / 옮긴이 : 카를로 로벨리 저. 김현주 역.
▶ 출판사 : 쌤앤파커스
▶ 짧은 독후감
군생활을 하던 시절에 과학철학자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저서인 『과학과 근대세계』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유기체 철학'을 여러 장에 나누어 설명한 후, 이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분석한 책이었다. 몇 달이 지나도록 그 한 권의 책을 끙끙대며 완독을 했지만,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의 발끝마저도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시공간을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사건들의 관계와 가능성으로 나타내려는 그의 철학이 그리는 세계의 모습은 도저히 필자의 머릿속에는 그려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강렬한 제목에 이끌려 읽은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다.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자 미시세계에서의 중력을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통하여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인 '루프중력이론'의 선구자 카를로 로벨리는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을 통하여 루프중력이론의 핵심 이론을 알기 쉽게 풀어씀은 물론, 이러한 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제안한다. 뉴턴이 제시했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의 관념을 부수고, 루프 형태의 중력장들의 연쇄라 할 수 있는 '공간'과 엔트로피의 흐름과 사건들 간의 상대적인 관계를 기술하는 도구로서의 '시간'에 대한 로벨리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가능태'와 '유기체'를 이용하여 시공간을 설명하고자 했던 화이트헤드의 의식의 흐름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이 책을 읽고 『과학과 근대세계』를 보게 됐다면, 조금은 더 몰입하고 내용을 이해하면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이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진정한 거장은 자신만이 아는 것을 과시하듯이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도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로서, 글로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로벨리 역시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복잡한 수식은 최대한, 아니 사실상 전부 배제할 뿐 아니라 이론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심경의 변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녹여냄으로서 양자중력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사람들도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가히 양자중력 물리학계의 거장이라고 할 만 하다. 대중과학자를 꿈꾸는 필자로서는 이런 거장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자극을 주기도 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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