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신이 아닌 한, 또 그렇게 될 수 없는 한, 길은 책에 있음에..."
2020년, 전역을 기념하여 선물로 받은 책에 아버지께서 적어주신 말씀입니다.
부끄럽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해 왔습니다.
전역한 이후에도 아버지의 말씀을 머리에는 새기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게을렀었죠.
이제는 다시금 책을 잡고, 책이 보여주는 여러 골목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이곳에 남기고자 합니다.
▶ 책 제목 : 『우리의 소원은 전쟁』
▶ 지은이 / 옮긴이 : 장강명 저.
▶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 짧은 독후감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문구는 수도 없이 보고 들어왔다. 통일의 당위나 이익에 대한 내 생각이 어떤지와는 별개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문구 자체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래서 수많은 중고책들 사이에 쌓여있던 이 책의 제목이 더욱 눈에 띄었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 아닌 전쟁이라니. 이 얼마나 자극적인 문구란 말인가. 거기에 더해 대남전단이나 혁명을 부르짖는 북한의 홍보전단에나 나올 법한 폰트와 그림체까지.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일지, 간만에 표지만 보고도 흥미가 동한 소설이었다.
제목과는 정반대로, 이 작품은 김씨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전쟁 없이 북한이 해체되고 한반도 북부에 '통일과도정부'와 다국적 연합군인 '평화유지군'이 들어선 시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북한군 특작부대 출신의 인간병기 '장리철'과 평화유지군 출신의 '미셸 롱' 대위, 그리고 미셸 롱의 통역으로 파견된 한국군 장교 '강민준'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액션 활극이라 할 수 있겠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스토리는 솔직히 진부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나 《사랑의 불시착》처럼, 살인병기로 길러진 북한공작원 한 명이 사건 해결의 단초를 찾아내고 나머지 두 명은 큰 능력은 없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는 먼치킨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글로 묘사되어있다고는 하지만 액션신이 화려하거나 멋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김밥천국 김치볶음밥 같은 소설이었는데, 무난하게 읽기 좋고 내 취향에도 맞았지만 스토리가 신선하거나 인상 깊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설의 배경 설정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원치 않는 상황은 얼마든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통일이라는 상황, 혹은 적어도 북한의 붕괴라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저자가 역설하는 듯 하였다. 물론 저자가 제시하는 방치로 인해 슬럼화가 진행되어 범죄의 온상이 된 북한이라는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극단적인 시나리오 마저도 대비해야 하는 것이 '통일' 내지는 '북한의 붕괴'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겪을 수도 있는 국가의 숙명은 아닐까.
여담이지만 내가 이 책을 읽을 시기에 한창 MBC에서 블록버스터 첩보물 드라마인 《검은 태양》을 방영했었는데, 그 작품도 나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자꾸만 소설 속의 장리철에 배우 남궁민 씨를 덧씌우게 되더라. '남궁민 씨가 이 대사를 치면 어떨까? 표정은 어떻게 짓고 목소리는 어떻게 할까?' 하는 공상이 들어서, 스토리에 몰입하다가도 흐름이 깨지고는 했다. 요즘 웹툰이나 소설 원작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작품도 영화화된다면 언젠가 남궁민 씨가 열연한 장리철을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로 이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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